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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정 사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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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 == {{{#!wiki style="border: 1px solid gray; border-radius: 5px; background-color: #F2F2F2,#000; padding: 12px" 상세 내용은 [[제정 사랜드/경제]] 문서 참고.}}} 제정 사랜드의 경제는 끝까지 농노제에 기반한 농업 경제였다. 1902년 인구의 86%가 농촌에 살았고, 전체 인구의 절반 남짓이 영주나 국가에 묶인 농노였다. 평원의 농업은 강물을 끌어들이는 관개에 기대었는데, 관개 수로와 수문은 대부분 영주의 소유였다. 영주는 땅뿐 아니라 물을 쥐고 있었으므로, 농노가 영지를 떠나는 것은 물을 떠나는 것이었다. 농노는 영주의 직영지에서 일주일에 사나흘 부역하거나, 영주의 허가를 받아 도시에 일하러 나가는 대신 해마다 공납을 바쳤다. 제정의 산업화는 아래에서가 아니라 위에서 시작되었다. 1854~1856년 서부 전쟁의 패배로 군의 낙후가 드러나자, 페타르 3세는 1859년 국영 병기창 칙령을 내려 크라슬리스크에 국영 병기창을 세우고 국가 주도로 철도를 깔기 시작했다. 공장의 노동력은 국가 농노를 공장에 묶어 두는 '배속 농노'와, 영주에게 공납을 내고 도시로 나온 '출가 농노'로 채웠다. 자본은 곡물 수출 대금과 1870년대부터 들여온 루이나 차관이었다. 1914년까지 제정은 약 2만 2천 km의 철도와 크라슬리스크·인터그라드의 병기·제철·방직 공업 지대를 갖추었지만, 공업은 군수와 철도에 치우쳐 있었고 농촌은 거의 변하지 않았다. 통화는 디나르였고, 1897년 금본위제를 도입했다. 주요 수출품은 곡물·면화·소금·구리였으며, 주요 수입품은 기계·철도 차량·무기였다. 제1차 세계 대전 중 철도가 군수 수송에 매달리고 1916년 흉작이 겹치면서 도시의 식량 공급이 무너졌고, 이것이 1917년 장미 혁명의 직접적인 원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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